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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잃어버린 10년
작성자 권은산 등록일 2007/08/08(14:52)
결혼 직전, 서울 변두리 S동의 18평형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얼마간 코묻은 돈에 부모님이 형제들 결혼시킬 때마다 나눠주던 다세대주택 전세금 정도를 합해 당시 *천여만원 하던 S동 18평형을 구입했던 것입니다. 출발은 괜찮았던 셈이었지요.

그 후 몇 년간 S동 아파트 가격이 거의 움직이지 않아, 몇 년 뒤 거의 매수가격 그대로 그 18평형을 처분하였습니다.
이 기간 이자비용만 지불하며 부동산으로 재산을 눈꼽만치도 불리지 못했습니다.
재테크 측면에서는 명백한 실패였습니다. 당시 열화와 같이 치솟던 주식시장에서 놀았으면 다른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직장 입사 뒤 가입해놨던 청약부금으로 동시분양이 있을때 마다 30평대 청약을 집어넣었습니다. 매번 빼놓지 않고 수차례 청약에 응했지만 높은 경쟁율로 전혀 당첨될 기미가 없었습니다. 작전을 바꿨습니다. 조금 인기는 떨어지지만 비교적 경쟁율이 약한 20평형대부터 시작하자는 결심을 하고 말을 바꿔 탔습니다.

그래서 덜컥 당첨된 것이 지금 살아가는 이 동네와의 '악연'의 시작였습니다.
이동네 모아파트 24평형이 당첨되어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 기간동안 다른 곳이 엄청난 가격상승을 이룬 것에 비해 이동네 24평 가격은 거의 정체상태였습니다. 아임에프때 24평형과 30평대의 가격차이가 좁아지자 결단을 내렸습니다. 20평형과 30평형의 가격차이가 평소 1억에서 절반 차이로 좁아졌을 때였습니다. 같은 아파트 30평형대로 겨우 말을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그 나마 작은 판단력과 결단의 성공였지만, 그때라도 다른 지역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상황보다 많이 좋았을 것입니다.

아임에프때 말을 갈아탄 같은 아파트 30평형대도 그 뒤 가격의 정체가 지루하게 계속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 다른 곳의 가격은 엄청 뛰는데, 이동네 구입했던 그 30평형은 대체 꿈쩍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이 따스한 남쪽지역의 지인들, 친구들은 재산가치를 두세배로 펑펑 튀겨가는데, 제자리에서 미동도 않는 가격정체에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다른 곳에 거주를 택한 지인들과의 재산가치는 격심하게 벌어졌습니다.
이 기간 저에게는 '잃어버린 10년' 였습니다.

몇해전부터 극심한 가격정체에 빠져있던 33평 무명브랜드 아파트를 처분하고자 무척이나 노력했습니다.
개미새끼 하나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한 3~4년동안 매도에 부단히 노력했지만, 매수세가 없어 그냥 눌러 앉아있던 중에, 작년연말 아파트 매수세가 꿈틀거리면서 기다리던 임자가 나타나 그 33평형을 겨우 처분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편한대로 동네 인근의 아파트를 얻어 전세로 옮겨가는 것이 우선였습니다.
가격정체를 거듭한 기존 아파트를 파는 것이 1차 목표였기 때문에, 매수자가 나타나자마자 가격흥정 없이 기꺼이 처분부터 하였습니다. 무조건 팔고 인근아파트의 전세로 옮기고 나니 '썩은이' 빠지 듯 후련했습니다.
하지만 팔고나서 전세를 구하려보니 이미 전세 매물이 부족하여 지금 엄청 비싼 전세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몇 년동안 꿈쩍도 않던 그 천덕꾸러기 아파트는 지금 몇 천 정도나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쓰렸습니다.

천덕꾸러기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기자마자, 이 동네 아파트도 가격이 막 뜨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는 구하기 어려웠고, 아파트가는 매주 기백씩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꼭 안풀리는 방향으로만 튀는 '머피의 법칙'이 나에게 적용 되었던 것입니다. 전세나 살면서 느긋하게 청약이나 제대로 하나 잘 살리자고 생각하던 마음이 급하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깡통차겠다 싶어 주말이면 근처의 새로 짓는 아파트 주변을 얼쩡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한 부담을 안고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로 갈 '막차티켓'을 어렵게 손에 쥐었습니다.

이번 연말쯤 입주할 아파트와의 인연은 그렇게 마련되었습니다.
작년연말 아파트 가격이 심하게 요동치지 않았던들 새아파트와의 인연은 없었을 것입니다. 허나 지금 그 인연이 괜찮은 인연이 될 것 같은 상상이 간혹 꿈자리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번의 주거지 선택에서 쓸만한 아파트와의 최초의 인연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평생 모아온 돈과 얼마간의 부채를 껴안고 모조리 쏟아부었고, 그곳에서 희망의 싹이 트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십수년간 저와 부동산과 인연은 이렇듯이 악연의 연속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S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 인연은 반드시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희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속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S가 꼭 뜨기를 희망하면서 스스로 마뜩치 않다고 보는 '형이하학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곳곳의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삶이 되었을 터란 생각을 모든 사람들이 하게 되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부동산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부동산이 부자를 만드는 한국사회에서 부자가 될 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구차하긴 하지만 마지막 S와의 인연이 그 '잃어버린 과거'를 조금이라도 되찾아 주는 기회가 되길 지금 손꼽아 기대하고 있습니다.
출처 : Tong - 훔냐리님의 부자가 되어보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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